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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나를 삼켰다

klikie 2025. 4. 19. 19:27

미니멀한 식사 세팅으로, 하얀 접시에 딸기 한 개만 놓여 있어요. 접시는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테이블매트 위에 있고, 나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어요.

 

 

혼자 밥을 먹는다는 간단한 행동 속에 담긴 다양한 감정과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는 에세이예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 혼밥의 순간들, 그 속에 담긴 미묘한 감정선을 함께 따라가 보세요. 혼자 식사하는 시간이 단순한 끼니가 아닌, 나를 삼키고 다시 만나게 되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요.


1. 혼밥의 순간, 그 미묘한 시작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제가 먹는 것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시선이었고, 선택이었으며, 때론 조용한 항복이기도 했죠. 어쩌면 제가 밥을 삼키는 게 아니라, 혼밥이 저를 삼키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처음 혼자 밥을 먹게 된 날은 평범한 화요일이었어요. 회사에서 유일하게 점심시간이 겹치지 않는 스케줄, 선배들은 미팅에 들어갔고 후배는 아직 입사 전이었죠. 창가 자리,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혼자 앉아 메뉴판을 들었을 때였어요. 직원이 다가와 물었어요.

 

두 분이세요?

 

그 질문은 은근히 따가웠어요. 아니요, 혼자예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자리를 옮기라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단지 물 두 잔을 놓을지 한 잔을 놓을지 묻는 의미였을까. 어느 쪽이든, 그 질문 속에는 식사는 함께 하는 것 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었어요.

 

식당의 조명은 은은했어요. 오후 1시, 점심 특선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아직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커플 테이블, 회사원 무리, 엄마와 아이. 그리고 저, 혼자. 제 앞에 놓인 공기밥은 허연 색이 더 허연 것처럼 느껴졌어요. 숟가락을 들자 소리가 났어요. 제 귀에만 들리는 것 같은 소리.

 

옆 테이블에서는 셋이 함께 웃고 있었어요. 누군가의 농담에 한 명이 쿡쿡 숨죽여 웃는 소리, 물을 마시는 소리, 반찬을 권하는 소리. 식당은 소리의 바다였고, 그 속에서 저는 섬이었어요. 그 섬에서는 제 숟가락 소리만 들렸죠.

 

한국의 식당 문화는 여전히 함께에 최적화되어 있어요. 혼자 먹어도 두 사람 분의 밥값을 내야 하는 곳, 혼자 오면 좋은 자리보다는 구석진 자리로 안내하는 곳, 혼자세요? 라고 확인하듯 묻는 곳. 그 모든 경험이 쌓이면서 저는 혼밥이란 말이 단지 혼자 먹는 밥이 아니라, 저를 삼키는 어떤 사회적 위치를 설명하는 단어임을 알게 되었어요.

 

식사가 준비된 테이블에 앉아 있는 테디 베어예요. 인형이 마치 혼자 식사를 하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고, 앞에는 여러 접시와 식기가 놓여 있어요.


2. 처음 맛본 혼밥의 쓴맛과 감정의 파도

 

제게 혼밥은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시작되었어요. 전공이 달라지면서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게 되었고, 한참을 배회하다 결국 학생식당에 들어갔던 날. 줄을 서서 식판을 받고,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을 때 느낀 그 막막함은 지금도 생생해요. 붐비는 식당에서 혼자 앉을 자리를 찾는 일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기분이었죠.

 

그 시절엔 밥을 삼키는 것보다 시선을 삼키는 게 더 어려웠어요. 실제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마치 모두가 저 사람은 왜 혼자일까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았죠. 그때의 식사는 음식이 아니라 시간을 먹는 행위에 가까웠어요. 빨리 먹고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자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요.

 

처음 몇 달은 그랬어요. 식당에 들어가기 전 망설임, 메뉴 고르는 시간의 어색함,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든 손이 미묘하게 떨리는 순간들.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와 웃음소리. 모든 것이 저와 세상 사이에 선을 그었어요.

 

어쩌면 그건 함께 먹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었을지도 몰라요. 가족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 시간, 수다를 떨며 먹었던 친구들과의 점심, 연인과 마주 보며 먹던 식사. 그 모든 기억이 혼자 앉은 테이블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죠. 저는 밥을 먹으며 기억을 씹고 있었어요.

 

밥이 입으로 들어오지 않던 날도 있었어요. 특히 감정이 요동치는 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감정을 나눌 사람 없이 식탁에 앉았을 때는 더욱 그랬죠. 회사에서 승진 소식을 들은 날, 축하를 건넬 사람을 찾아 식당을 둘러보다가 결국 혼자 맥주를 마시던 기억. 또는 이별 직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기계적으로 씹던 순간. 혼밥은 때론 감정의 과잉을, 때론 감정의 부재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날들, 저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혼밥에 제 자신이 삼켜지고 있었어요.

 

어둡고 분위기 있는 사진으로, 하얀 커피 컵과 받침이 찍혀 있어요. 조명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다소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요.


3. 혼밥이 가져다준 변화와 발견의 시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는 찾아왔어요. 처음에는 불편했던 혼밥의 시간이 점차 제 시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죠. 휴대폰을 보며 웹툰을 읽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거나, 때론 식당 소음 속에서도 책을 읽는 법을 배웠어요. 혼자 먹는 시간은 이제 도망치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제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제가 원하는 속도로 먹고, 저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 그 안에서 일종의 자유를 발견했어요. 누구와도 대화할 필요 없이, 오직 나와 마주하는 시간. 그것은 고립이자 동시에 해방이었죠.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요. 제가 혼밥에 익숙해진 게 아니라, 혼밥이 제게 익숙해진 것 같다고. 더 이상 서버가 혼자세요? 라고 묻지 않았어요. 제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들은 이제 알고 있었죠. 저 사람은 혼자 먹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저는 혼밥러가 되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혼밥에 삼켜진 채로 그 안에서 숨 쉬는 법을 배운 사람이 되었죠.

 

이제 혼밥은 제 일상의 일부가 되었어요. 어떤 날은 여전히 어색하고, 어떤 날은 놀라울 만큼 편안해요. 가끔은 실수로 수저 두 개를 달라고 꺼낼 때도 있어요. 습관이란 게 그런 거예요. 오랜 기간 함께 먹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하얀 접시 위에 티라미수나 비슷한 작은 디저트 조각이 있어요. 접시에는 "Take me away"라는 글씨가 초콜릿 소스로 쓰여 있고, 옆에는 숟가락이 놓여 있어요. 디저트는 코코아 가루가 뿌려진 것 같아요.


4. 혼밥, 나를 삼키고 다시 만나는 시간

 

하지만 혼자 밥을 먹으며 다른 것을 배웠어요. 침묵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법. 제 생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혼밥에 삼켜진 채로 자신을 찾아내는 법을요.

 

혼밥은 더 이상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때로는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시간이죠. 복잡한 하루 끝에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혹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의 시간이 필요할 때. 그렇게 혼밥은 타인과의 단절이 아니라, 제가 저를 삼킨 후 다시 만나는 연결의 시간이 되었어요.

 

지하철역 근처 작은 식당에서 오늘도 저는 혼자 밥을 먹어요. 이제는 자연스럽게 구석 자리를 찾아 앉고, 책을 펴거나 창밖을 바라봐요. 때론 그저 음식의 맛에 집중하기도 해요. 음식을 씹는 소리, 후추의 향,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 혼자이기에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혼밥이라는 단어가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혼밥을 그저 상태나 선택의 문제로만 바라봐요.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불쌍하거나, 아니면 특별히 독립적인 사람으로 단순화되죠. 그러나 제가 알게 된 것은, 혼밥이란 그 무엇보다 감정적인 경험이라는 점이에요.

 

때로는 외로움이고, 때로는 평화예요. 어떤 날은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기분이고, 또 어떤 날은 모든 것이 무거워 숟가락을 들기조차 힘든 날이죠. 그 모든 감정의 무게를 안고 우리는 매일 식탁에 앉아요.

 

혼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는 왔어요. 이제는 혼밥에 삼켜진 우리 모두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대가 왔으면 해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그 사람에게도 하루가 있고, 그 하루 안에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때로는 이라는 것을요.

 

오늘도 저는 식탁에 앉아 혼밥을 해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삼키고, 기억을 씹고, 감정을 소화시키는 시간. 혼자이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제가 저를 삼키고 다시 만나는 시간.

 

혼밥, 그건 결국 저를 삼켰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더 깊은 저를 만났어요.